돌아오지 않는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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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답
  • 나인문 기자
  • 승인 2017년 04월 06일 19시 32분
  • 지면게재일 2017년 04월 07일 금요일
  •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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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본사 편집국장
[나인문의 窓]

‘나는 여기 망실하게 있는데/ 너는 내 곁에 다시는 올 수 없다니/ 새순 돋고 꽃이 피어도 서럽다/ 하늘보다 더 서럽고 바다보다 더 서럽다.’

제주의 한 중학교 교사인 김수열 시인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 중 가장 큰 참척(慘慽)의 고통을 그렇게 절규했다. 꽃다운 청춘들이 진도 맹골수도에서 영문도 모르고 속수무책으로 죽어간 이후 먹지도, 제대로 잘 수도 없었던 부모들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부모가 자식을 앞세우는 참척의 고통을 견디기까지 눈물은 또 얼마나 많이 흘려야 했을까. 살아있는 자가 감히 어떤 말로 그 고통을 대신할 수 있을까.

사망 295명, 실종 9명.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가 3년만에 수면 위로 참혹한 모습을 드러냈다. 3년동안 봄이 오지 않던 차가운 바다에도 마침내 볕이 들고 있다. 그러나 304명의 고귀한 생명이 별빛되어 1700만개의 촛불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진실까지 인양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박근혜는 내려오고 세월호는 올라오라’는 간절한 외침이 현실이 되었지만, 아직도 ‘세월호 7시간’은 하나도 밝혀진 게 없다.

봄이 와도 봄을 느낄 수 없었던 부모들은 짐승같이 어두운 바다에서 엄마 아빠를 그리워했을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 오늘도 그 바다를 지키고 있다. 봄을 느끼는 것 조차 사치라고 여겼던 유가족들의 마음은 아직도 한겨울이다.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봄이지만 그들에게는 여전히 가슴아픈 4월이고 잔인한 계절일 수밖에 없다.

분노와 슬픔의 눈물들이 모여 거대한 촛불의 바다를 이뤄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과는커녕 제 변명 찾기에만 매달려 있다. 진실이 뭐냐고 아무리 물어도 답이 없다. 떨어진 꽃들이 아직도 세월호에 갇혀 있지만 제 갇힌 것만 억울하다며 현실을 애써 외면하려고 한다. ‘운명의 장난(the irony of fate)'처럼 대통령이 파면되자 세월호가 인양됐다. 이렇게 올라올 수 있던 것을 왜 3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또 다시 대선이다. 잃어버린 지난 4년의 국정실패에 대한 책임은 없고, 저마다 국민을 섬기고 행복한 국가를 만들겠다고 혹세무민하고 있다. 차라리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입을 닫고 싶은 심정이다.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은 그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고 읊조렸지만,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4월은 정말로 잔인한 계절이 됐다.

더 잔인한 건 ‘망각’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2014년 4월 16일을 잊을 수 없다. 부패한 가지 끝에서 ‘진실’이 꽃 피기까지 절대로 잊어서도 안 된다. “배안에서 기다리라”며 수많은 목숨을 수장시킨 이유와 그 일곱시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을 했는지 밝혀야 한다. 누구에겐 자랑스런 아빠고 따뜻한 엄마이며, 누구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들을 캄캄한 바다 속에 수장시킨 책임을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그러한 책임을 지지 못하는 대통령을 뽑는다면 우리는 또 다시 잔인한 4월을 맞이할 수도 있다. 세월호의 목적지는 분명 제주였고 목포가 아니었듯, 우리가 마주하는 대통령은 위선과 거짓이 아닌 정직과 진실이 종착역이 돼야 한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봄이 왔다. 꽃이 피고 신록이 움트는 봄이 왔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가슴이 시린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