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상처는 통증을 남기고, 마음의 상처는 트라우마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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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상처는 통증을 남기고, 마음의 상처는 트라우마를 남긴다
  • 충청투데이
  • 승인 2017년 07월 13일 19시 33분
  • 지면게재일 2017년 07월 14일 금요일
  •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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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경현수 나음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치열하게 삶을 살다 보면 크든 작든 상처를 받기 마련입니다. 몸에 상처가 생기면 통증이 느껴지고 상처 회복을 위한 시스템이 활성화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통증은 가라앉고, 상처엔 흉터가 남습니다. 얕은 찰과상은 소독만 잘해도 낫지만, 깊은 상처는 잘 치료하지 않으면 만성 통증이나 드물게는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CRPS)이라는 후유증을 남기기도 합니다.

몸에 난 상처와 달리 마음의 커다란 상처는 ‘심리적 트라우마’를 남깁니다. 상처받은 마음을 돌보는 정신과 의사로 일을 하다 보면 마음의 상처를 잘 돌보지 못하고, 상처가 깊어지고 덧나서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생겨서 병원에 방문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심리적 어려움을 표현했을 때 약하거나 인내가 부족한 사람처럼 인식될까 두려워 혼자 앓고 있었거나, 도움을 요청했을 때 주변의 냉담한 반응으로 트라우마를 마음속 깊숙한 곳에 숨겨둔 채로 지낸 경우가 많았습니다.

1980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는 진단명이 정식진단체계로 포함되면서 본격적인 연구가 이뤄지기 시작했고, 이후 뇌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트라우마가 어떻게 뇌 신경계를 교란하고 증상을 일으키는지 밝혀졌습니다.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이 나약하거나 참을성이 부족하다는 오명을 벗게 된 것이지요.

트라우마 이후의 우리 몸은 생존을 위한 방어태세로 돌입합니다.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졸' 분비와 자율신경계의 활성이 극대화되면서 사소한 자극에도 과민한 반응, 집중력 문제, 불면, 충동적인 행동이 나타납니다. 안전함이 몸과 마음에 온전히 느껴질 때까지 이 반응은 계속됩니다. 온갖 위험이 난무하는 블록버스트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구급대원과 경찰이 생존자를 구출하며 “이제 당신은 안전합니다”는 말과 함께 담요를 덮어주면서 끝납니다. 이것이 우리가 트라우마 상태의 사람을 대처하는 가장 핵심입니다.

안전을 확보해주고, 지지적인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이 트라우마 회복의 첫 걸음입니다. 그리고 트라우마 반응이 정상적인 것이라고 안심시켜주고, 필요할 땐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돕기 위해서 상황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것은 다시 트라우마를 겪게 할 수 있으므로 조심스럽게 이뤄져야합니다. 안정화 이후에는 일상으로 복귀가 중요하며, 이를 돕기 위해 변연계와 대뇌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치료법들로 안구운동민감소실법(EMDR), 최면치료, 인지행동치료, 뉴로피드백 치료법이 있으며, 증상에 따라 불안정한 신경계를 안정화하는 약물치료를 병행 합니다.

트라우마를 치유하면 후유증으로 삶의 방향이 삐뚤어지거나 황폐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고, 그 시기가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심리적 트라우마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배려가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예상치 못한 풍랑을 만나고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릴 수 있는 인생이란 바다의 항해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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