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담배공장의 공감과 평화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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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담배공장의 공감과 평화의 목소리
  • 충청투데이
  • 승인 2017년 11월 26일 18시 08분
  • 지면게재일 2017년 11월 27일 월요일
  •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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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광섭 청주문화산업진흥재단 콘텐츠진흥팀장
[에세이]

기억이 발효되면 추억이 되고, 추억은 퇴적층처럼 쌓여 삶의 마디가 된다. 다시, 그 삶의 마디와 마디가 모여 풍경이 되고 역사가 된다. 잊혀지고 사라진 것들의 슬픔을 말해 무엇하랴만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 별처럼 수많은 이야기가 반짝인다. 오래된 것들은 스스로 빛을 낸다고 했던가. 사랑을 하려면 천 년, 만 년 변치 않는 사랑을 해야 한다. 마음의 등불이 되고 세상의 빛이 되는 위대한 성찬 말이다.

불 꺼진 담배공장, 매캐한 담배냄새가 진동하고 먼지와 거미줄로 가득하며 비둘기 똥이 켜켜이 쌓여있던 옛 청주연초제조창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던 것은 2011년에 열린 공예비엔날레다. 나는 그날 생전 처음으로 넓고 높고 야성적인 담배공장을 보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피를 토하고 흥분해 여러 날 밤잠을 설쳤다. 지구상 최고의 문화공장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던 것이다.

이 같은 나의 생각은 헛되지 않았다. 세계 각국에서 온 문화전문가, 디자이너들은 문화콘텐츠를 담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며 입을 모았다. 전시는 물론이고 공연과 다채로운 퍼포먼스를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크리에이터 이어령은 "바다없는 청주에, 콘크리트 건물에 지구상 유례없는 문화의 바다를 만들자"고 웅변했다. 뉴욕 퀸즈미술관의 탐즈 관장은 "건물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복된 일"이라며 세계시민이 힘을 모아 아트펙토리를 만들자고 했다.

2017년 11월 지구촌 50개국의 공익활동가와 글로벌 리더 500명이 이곳을 찾았다. 공감과 평화를 주제로 한 'BETTER TOGETHER 2017'이라는 세계문화대회를 개최한 것이다. 장폴 삼푸트, 데니스 홍 등 글로벌 리더 8인의 메시지의 핵심은 바로 '다름'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드는데 있었다. 국가와 지역과 사람 간 서로 다름의 가치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함께하기 위한 노력을 통해 세상을 밝고 행복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 중심에 청주가 있어야 하고, 불 꺼진 담배공장이 글로벌 캠프로 손색없다고 입을 모았다.

소설가 신아연 씨는 “청주는 맑고 향기로운 고장이고 순수함과 비움의 미학을 간직하고 있다. 비어 있기 때문에 채울 수 있으며 넉넉함이 생기는 것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그 중심인 청주에서 맑은 기운이 넘치는 생명의 울림을 만들자”고 했다.

김수종 국제녹색포럼 이사장은 연초제조창의 매력을 강조했다. 스페인과 영국의 폐공장처럼 문화의 옷을 입고 예술의 향연으로 가득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은 시간문제다. 균일성과 다양성의 조화, 과거와 현재의 조화, 지역과 글로벌의 조화가 필요한 이 시대에 가장 적절한 공간이라는 설명이다.

김원일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사무총장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연성을 갖고 있다. 도시의 삶도 그러한데 연초제조창은 인공적이고 산업화의 유산이지만 분명 자연성을 닮았다. 그래서 아름답다. 다함께 공감하는 전시, 공연, 토론, 그리고 추억과 사랑이 깃든 먹거리까지 특별했고 인상적이었으며 값진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안진의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교수는 색채로 말을 하는 사람이다. 공간이 너무 좋아서 무엇이라도 담을 수 있다는 설렘 때문에 하루만 머무르겠다는 당초의 계획을 수정해 행사 기간 내내 청주에 머물렀는데 서울 중심의 문화에서 탈피해 지역문화의 새로운 도약을 응원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두근거린다. 사람은 하루에 십만 번 이상 두근거리고 꽃들도 새들도 두근거린다. 가장 아름다운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위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오늘도 길을 나선다. 이 모든 극적인 순간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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