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햇살이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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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햇살이 곱다
  • 충청투데이
  • 승인 2017년 12월 14일 19시 40분
  • 지면게재일 2017년 12월 15일 금요일
  •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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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억수 충북시인협회장
[에세이]

12월이다. 한 장 남아있는 달력을 바라보니 아쉬움이 가득하다. 떨어져 나간 수많은 나날 속에서 지난 세월의 아쉬움과 앞날의 희망이 교차한다. 12월이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기 위해 청주 우암산을 오른다. 우암산 소로를 걸으며 심호흡을 해본다. 어머니 치마끈처럼 길게 늘어져 있는 소로를 따라 걸으면서 나의 길을 돌아본다. 나의 길도 늘 편안하고 아름다운 길만은 아니었다. 우암산 소로처럼 때로는 오르막길도 만났고 내리막길을 급하게 내려오다 넘어지기도 했다. 어떤 날은 갈림길에서 목표를 잃고 방황하기도 했다. 문학적 열정도 시들고 치열했던 시심도 잠든 때도 있었다. 그때는 무기력하고 험난한 나의 길이 내 생의 치욕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뒤를 돌아보니 그 또한 아름다운 도전이고 삶의 여정이었다.

문학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어떠한 삶의 길을 걸어가고 있을까? 나에게 문학은 별개의 삶의 조건이 아니라 나의 삶 그 자체이다. 내 인생에 있어 또 다른 무엇을 하려는 준비가 아니라 본연의 자아와의 만남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문학은 나의 삶 그 자체이다. 작품 속에 표현되는 모든 가치는 진솔한 나의 삶의 이야기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실제적 체험은 내 삶의 모든 국면과 관련되고 그것을 전체적으로 작품의 소재로 삼기에 나의 삶이 곧 문학이다.

소로를 따라 구불구불 걷다보니 마음이 새롭다. 눈에 들어오는 모두가 새삼 아름답다. 비단 오늘 뿐이겠는가? 어제 바라본 풍경이 오늘과 다르고 날마다 마주치는 사람들도 매일 다르다. 이렇듯 늘 새로운 변화와 함께하면서도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하고 살았다. 오늘에서야 깊은 숨을 뱉으며 일상의 틀 속에 가두어 놓은 나를 부순다.

나의 길은 늘 편안하고 아름다운 길만은 아니었다. 굴곡진 길보다는 편안한 길로만 가고 싶었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참으로 멀리도 걸었다. 구불구불 내가 지나온 길이 이제는 아름답게 보인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세월 제대로 하늘 한 번 숲 한 번 바라보지 못했다. 돌이켜 보니 계절마다 길은 나에게 다른 선물을 주었건만 나는 그것을 받을 준비를 하지 못했다. 늦은 가을 길을 걷는 나이가 돼서야 아! 봄도 아름다웠고 여름도 활기찼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이 길을 건너면 춥고 외로운 겨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한 발 한 발 걷다보면 겨울의 앙상한 나뭇가지도 시린 눈꽃도 아름다움으로 맞이할 것 같다.

모든 것이 자연의 섭리대로 돌아가는 것이 이제야 보인다. 치열하지 못한 나의 삶을 위해 다그치던 아내의 현명한 조언이 잔소리로 들리더니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아이들도 모두 출가해 제 식구 챙기기에 바쁘다. 생각해보니 수없이 스치고 지나간 사람 중에 내가 먼저 마음의 빗장을 풀고 만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문학인으로 마음을 정화하지 못했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이 문학이라며 머리로는 생각하면서 가슴으로 실천하지 못한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다. 좀 더 진솔해야겠다. 그리고 절실해야겠다. 그동안 나는 문학을 생업으로 하는 전업 작가보다는 절실함이 부족했다. 글을 쓰지 않으면 몸살을 앓는 절실함이 부족했다. 작가로서의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 이제 글을 쓸 때 좀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겠다. 더불어 가야 할 삶 많은 사람이 내 안에 들어와 함께 웃고 함께 즐거워할 나의 길을 만들어 가야겠다. 우암산 소로에 앞장서는 12월 햇살이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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