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픽]日 악랄한 세금 징수에 농민이 들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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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픽]日 악랄한 세금 징수에 농민이 들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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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년 07월 27일 09시 30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7월 27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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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부 헌병·경찰 주둔비로 고민, 각종 세금 부과… 천안 유독 심해
日 수세관들 장날 강제징수 계획, 가마니값서 공제… 반일시위 확산

1910년 한·일합방이 아직 이뤄지기 전부터 일본 통감부는 사실상 식민정책을 강행했다.

특히 일제는 합방을 달성하기 위해 계속 헌병과 경찰을 증가시켰기 때문에 그 주둔비가 큰 문제였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술에 부과하는 주세를 비롯해 텃밭에 심는 담배까지 세금을 물리는 연초세, 그리고 집집마다 징수하는 가옥세 등등 지금까지 들어보지도 못한 이름의 세금을 우리 농민들에게 퍼부었다.

그중에서도 천안지방이 심했다. 세금 부과도 많았지만, 징수방법도 매우 강압적이었다.

1920년대 천안장날 중앙시장. 천안시 제공
1920년대 천안장날 중앙시장. 천안시 제공

그래서 천안지방 농민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은연중 납세 거부 운동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그러니 천안에서는 세금이 잘 걷힐 리가 없었고 일본인 수세관은 통감부로부터 서슬 퍼런 추궁을 당해야 했다.

할 수 없이 수세관은 천안 장날인 3월 12일을 '디데이'로 잡고 강제 징수 계획을 세웠다. 마침 그날은 겨울 동안 농민들이 집에서 짠 가마니를 출하하는 날이었다. 장터 마당에는 가마니가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관리들이 가마니를 등급에 따라 수매하고 현금을 지불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농민들에게는 가마니 짜기가 유일한 부업이었고 현금을 만질 수 있는 기회였다. 따라서 농민들은 새벽부터 땀을 뻘뻘 흘리며 가마니를 짊어지고 장마당으로 모여들었다.

그런데 가마니 전표를 내밀고 돈을 찾으려는 농민들 앞에 일본인 수세관이 나타나 개인별 세금 체납을 확인하고는 가마니 값에서 그것을 공제하는 것이 아닌가. 어떤 농민은 죽어라 애써 가져온 가마니였으나 돈 한 푼 못 받고 빈손으로 돌아서야 했다. 겨우내 짠 가마니인데 세금으로 다 빼앗기는 농민들은 실망과 분노가 들끓기 시작했다.

한 농민이 일본인 수세관에게 세금징수를 분할해서 내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다. "오늘 제가 꼭 돈이 필요합니다. 일부만 내고 모자란 것은 다음 장날 가마니를 짜서 가져오는 것으로 갚겠습니다. 부디 한 번만 봐주십시오"하며 농부는 빌다시피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국인 보조원이 큰 소리로 농민을 나무랐다. 세금 분할납부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농민이 물러나지 않자 한국인 보조원이 농민의 뺨을 때리는 것이었다.

그 순간,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다른 농민들이 '네가 일본놈 앞잡이면 앞잡이지, 왜 사람을 때리냐?'며 항의를 했다. 그리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본 수세관 사무실로 몰려가 세금 장부를 찢어버리고 급기야 사무실에 불을 질렀다.

그러면서 '가옥세가 웬 말이냐!' 등 구호를 외치며 행진에 나섰다. 세금 강제 징수가 반일 시위로 번진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급변하자 일본 헌병대가 출동해 진압 작전에 나섰다. 헌병들은 장총에 착검을 하고 곧 발포라도 할 듯한 자세를 취했다. 팽팽한 긴장이 한동안 이어졌으나 농민들은 더 버티질 못하고 헌병들에 의해 끌려갔다.

일본 헌병들은 처음 주모자급이라 하여 20명이나 체포했으나 3명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모두 석방했다. 그리고 그 3명도 공주 감옥으로 이송했으나 얼마 안 있어 한·일합방이 돼 풀려났다. 친일 내각의 이완용 총리대신은 천안 군수에게 다시는 이와 같은 소요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는 경고와 함께 화재로 소실된 수세관 사무실도 복구시켜주도록 지시했다.

이것이 일본의 세금 강제 징수에 대한 전국 최초의 저항이었다.

[변평섭의 충청역사유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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