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기고] 1929년 대공황의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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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기고] 1929년 대공황의 시사점
  • 충청투데이
  • 승인 2019년 09월 17일 18시 53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9월 18일 수요일
  •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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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석 대전농협 본부장

경제 불황이 계속 이어질 때 '1929년의 대공황(Great Depression)'이 떠오른다. 1929년 10월 24일 목요일 아침 '뉴욕 주식거래소'에서 주가가 대폭락 한 데서 장밋빛 미래를 삼킨 '검은 목요일'이라고 부른다. 대공황의 여파는 1933년 말까지 거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에 영향을 미쳤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유럽 여러 나라에 돈을 빌려 주는 채권국이었고 해마다 엄청난 무역흑자를 올렸다. 이 시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증권시장에 드나들었고 많은 사람들은 사치와 향락에 빠져 지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호황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임금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임금이 오르지 않자 소비는 점차 줄었으며 상품 재고가 누적됐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생산량을 줄이기 시작했고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위기감이 증폭되면서 주가는 더욱 떨어지고 기업들과 은행이 파산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이 무너지면서 실업이 늘고 소비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1928년 멕시코의 벽화 화가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는 이 시기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벽화인 '월 스트리트 벽화'를 그렸다. 벽화에 나오는 사람들 모두 테이블 위로 구불구불 나오는 기다란 종이테이프를 들고 있다. 이것은 바로 증권 시세가 찍혀 나오는 티커 테이프이다. 또 벽화에는 당시 미국 경제를 주름잡던 석유사업가 록펠러, 금융인 모건, 포드 자동차 회사의 창업주 헨리 포드 등이 등장한다. 그림의 뒤에는 거대한 금고가 신성한 재단처럼 자리하고 있다. 자유의 여신상은 횃불 대신 램프를 들고 시녀처럼 이들의 연회를 비춰주고 있다.

대공황의 원인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한 달 반 만에 반 토막이 돼 버린 주가 대폭락을 이유로 든다. 자산가치가 줄고 심리적으로 불안해진 주주들이 소비와 투자를 줄여 소비재와 자본재의 재고가 산더미 같이 쌓였다. 기업은 생산을 축소하고 고용을 줄이니 실업자가 늘어나 소비가 더욱 줄고 생산은 감소되는 악순환이라는 것이다. 도산 기업이 속출했고 은행의 파산으로 이어졌다. 은행이 파산하니 투자자들이예금 인출 사태를 초래해 더욱 많은 은행이 연쇄 파산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학자에 따라서는 1929년 대공황 원인에 대해 위와 같은 과정에 동의하지만 주가 폭락이 주요 원인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주가 폭락은 하나의 신호였을 뿐이라는 의견이다. 당시 소비와 투자를 아우르는 총수요의 감소로 생산과잉이 발생한 상황에서 연방준비은행의 금융긴축 정책이 겹치면서 사태가 최악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대공황의 원인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와 연방준비은행의 금융긴축과 같은 일련의 잘못된 금융정책으로 나눠진다. 미국은 대공황이 발생하자 총수요를 늘리기 위해 영국의 케인즈가 주장한 수정자본주의를 도입했다. 국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공공사업을 벌여 일자리를 만들어 가며 독점적인 기업활동을 규제하고 정부가 나서서 임금협상을 관여했다. 최저임금제도를 도입하고 무분별한 과잉생산을 막고 수요를 늘리기 위해 노동자의 임금과 소득을 안정시키는데 적극 개입했다.

미국의 이러한 케인즈식 경제정책은 고전경제학파 주장인 '공급이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Say Law)'의 부정에서 출발했다. 케인즈는 총수요, 즉 가계의 소비, 기업의 투자, 정부의 지출을 합한 수요가 총공급보다 적은 상황이 얼마든지 지속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불황을 타개하려면 수요를 늘려야 하는데 소비자는 소득에 따라 소비 지출이 제한적이므로 결국은 기업투자와 정부 재정 확대를 기하는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