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100년 전에는 음식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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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100년 전에는 음식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 충청투데이
  • 승인 2019년 10월 16일 16시 15분
  • 지면게재일 2019년 10월 17일 목요일
  •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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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영 청주시 위생정책과 위생정책팀장

100여 년 전 청주의 관문이자 도심의 중심지는 일제강점기 1921년 지어진 청주역이었다. 쌀 운반을 목적으로 철도망이 이어지면서 충남 조치원과 충북 청주를 잇는 노선이 개통돼 당시 역 앞 광장은 만남의 장소이자 충북 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그러나 신도시 개발 및 충북선 복선화 완공 등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라졌던 청주역은 올해 문을 연 옛 청주역사(淸州驛舍) 전시관으로, 향수(鄕愁)의 공간이자 새로운 명소로 탄생했다.

시는 쇠퇴한 구도심 상권 활성화 방안으로 '옛 청주역사 재현 및 환경정비사업'을 완료했다.

옛 청주역사 전시관은 상당구 북문로 2가 113-2 일대 2227㎡의 터에 건축면적 202㎡ 규모로 지어졌고 광장과 주차장도 조성됐다. 전시관은 내부에 청주 옛 기록사진, 옛 승무원 물품, 청주역 소개 등이 외부에는 철길, 기차 모형이 전시된다.

100년 전 시대의 전통 음식 조리법은 어땠을까? 청주시는 오는 25일부터 26일까지 문화제조창C 동부창고 36동에서 반찬등속 음식문화 체험행사를 열어 100여 년 전 우리 지역 근대유산인 '반찬등속'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옛 청주 음식을 통한 전통 음식문화 체험과 소통의 장을 마련한다. 반찬등속은 한글로 쓴 1900년대 초반의 조리서로, 청주지역 양반가인 진주 강 씨 집안에서 전해 내려오는 요리책이다. 겉표지에는 '반등속'이라고 한글로 적혀 있고, 그 옆에 나란히 한자로 '饌膳繕冊(찬선선책)'이라고 쓰여 있다. 앞표지에 '계축 납월 이십사일'이라는 필사 기록으로 보아 1913년 12월 24일 필사가 완료된 것으로 추정된다. 뒤표지에는 '청주서강내일상신리(淸州西江內壹上新里)'(현 흥덕구 상신동)라는 지명이 표기됐는데, 당시 이 마을은 진주 강 씨 집성촌이었다. 강희명의 13대 손인 강귀흠(姜貴欽, 1835~1897)의 부인 밀양 손 씨(1841~1909)가 쓰고 1913년 손자 강규형(姜圭馨, 1893~1962)이 재정리한 것으로 조사됐다.

20세기 초 충청도 지역의 음식과 조리법을 살펴볼 수 있어 청주지역 식생활 연구의 기본 자료로 활용된다. 짠지, 화병, 염주 떡 등 독특한 충청도식 조리법 '반찬등속'은 평소 집에서 즐겨 먹는 반찬의 조리법을 수록했다. 김치 9종, 짠지 8종, 찬물 7종, 만두 1종, 병과 14종, 술 3종, 음료 2종, 그리고 흰떡을 오래 보관하는 법과 고추장 맛있게 먹는 법도 실었다.

지난 7월 청주시는 민선 7기 1년 성과를 다지고 함께 꿈꿀 3년 청주 비전을 선포했다. 그 속에는 역사도시 청주를 시민과 발맞춰 걸어갈 천일 구상을 펼쳤다. 그 일환에 반찬등속 사업이 있다.

우리 주변에는 의외로 100여 년 전 역사적 장소가 많다. 청주시 제2청사 담장에는 율곡 이이(李珥?1536∼1584) 선생의 비석이 있다. 율곡 선생은 한때 청주목사(淸州牧使)로, 청주 동헌에서 근무하면서 청주 향약을 제정·시행했다.

비석에 쓰인 '율곡선생수식송(栗谷先生手植松)'은 율곡 선생이 임기를 마치고 떠나면서 동헌 앞에 직접 소나무를 심었다는 뜻으로, 이를 기념해 후임 목사가 1886년 비석을 세운 것이다. 소나무는 지난 1946년 고사하고 지금은 비석만 남아 있다.

요즈음 나라 안팎으로 주변 정세가 어지럽지만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묄세'이다. 흔들림 없는 자세로 미래의 100년 대한민국, 좀 더 가까이 1000일 후 파안대소(破顔大笑)하는 청주시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