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규의 서예이야기] 가도사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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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규의 서예이야기] 가도사벽
  • 충청투데이
  • 승인 2019년 11월 17일 16시 08분
  • 지면게재일 2019년 11월 18일 월요일
  •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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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前漢)때의 문인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는 집안이 몹시 가난해 임공(臨公) 현령으로 있는 왕길(王吉)에게 잠시 몸을 의탁한 적이 있었는데, 이 이야기는 그때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상여와 왕길은 지역의 갑부 탁왕손(卓王孫)의 연회에 초청을 받아 함께 참석했다. 연회의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 갈 무렵 취흥이 오른 상여가 거문고를 탄주하기 시작했다. 이때 감미로운 거문고 소리에 끌려 문틈으로 연회석을 들여다보던 탁왕손의 딸 탁문군(卓文君)은 취흥에 겨워 거문고를 탄주하는 상여의 고아한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그녀는 열여섯에 남편을 사별하고 친정에서 1년 가까이 지내고 있었는데, 미색과 재능이 뛰어난데다 음악도 매우 좋아했다.

상여 문군의 미모에 흠뻑 빠져서 거문고 가락에 연정(戀情)을 실어 그녀에게 보냈다. 연회가 끝나고 밤이 깊어지자 문군은 그 무엇에 이끌리듯 집을 몰래 빠져나와 상여에게 찾아갔다. 두 사람은 즉시 수레를 타고 밤길을 달려 성도(成都)에 있는 상여의 집으로 도망쳤다. 막상 상여의 집에 도착해 보니 얼마나 가난했던지 집안에는 네 개의 벽(家徒四壁)을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문군은 절망하지 않고 간단하게 혼례를 치른 다음 살림을 꾸려 나갔다. 이들은 임공으로 들어와서 술집을 차렸다는 말을 듣고 부끄러움에 문밖출입조차 하지 않던 탁왕손도 시간이 흐르자 노여움이 풀어져 마침내 두 사람의 결혼을 인정하고 많은 재산까지 나눠 주었다.

큰 재산을 물려받은 상여는 술장사를 그만두고 성안으로 들어가 작품 활동에만 전념했다. 그 후 상여는 그의 작품 자허부(子虛賦)가 도성(都城)으로 불러들여 벼슬을 내리면서부터 필명(筆名)을 날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애뜻한 사랑 이야기는 공자(孔子)의 사상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당시의 풍속으로는 파격적인 것이었으며, 오늘날도 중국에서는 소설이나 연극의 소재로 자주 이용되고 있다.

<국전서예초대작가·청곡서실 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