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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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운다
  • 충청투데이
  • 승인 2020년 03월 19일 18시 49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3월 20일 금요일
  •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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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대원 전무이사(수필가)

세계는 지금 평정을 잃은 것 같다. 날이 갈수록 감염자와 사망자가 늘어나는 상황이다. 전염되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하나 진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순식간에 코로나 19는 인간의 손과 발을 묶어 놓는다. 개인과 상점 그리고 국가들이 빗장을 걸고 있다. 문을 닫는 행위는 잡았던 손을 놓는다는 증거이다. 서로 믿지 못하는 모습 같아 심기가 불편하다. 여러모로 심신이 우울한 사람이 한둘이랴. 남몰래 통곡의 방을 찾고 싶은 심정이다.

요즘 많이 사용하는 언어가 '코로나'이다. 고통의 단어를 누군가의 이름처럼 흔하게 부르고 있다. 그 이름을 수없이 부르다가 정이 들까 두렵다. 전염병 영향으로 여러 곳에서 속울음이 들린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식당과 여행사, 출판사와 인쇄소가 울고, 생업과 육아 간극에서 맞벌이 부부가 울고 있다. 그들은 눈물보다 진한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참으로 소소한 일상이 그립다. 남녘 매화꽃이 구름같이 피었는데 문밖을 한 걸음도 나설 수가 없다. 꽃구경 기약은 코로나로 어그러지고 녹음이 무성해지면 묶인 발이 풀리려나. 발 달린 짐승으로 태어난 것이 후회스럽다. 이런 불편한 환경을 만든 대상을 따져 물으면,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답답한 마음을 어디에다 털어놓으랴. 순간 떠오르는 문장가가 있다. 당송팔대가인 한유는 사물이든 사람이든 평정을 잃으면 '가장 잘 우는 것을 골라 그것을 빌려 운다'고 적는다.

"사물은 평정(平靜)을 잃으면 운다. 초목(草木)은 소리가 없지만 바람이 흔들어서 울고, 물도 소리가 없지만 바람이 쳐서 운다. (중략) 새는 봄을 울고, 천둥은 여름을 울며, 벌레는 가을을, 바람은 겨울을 운다. (중략) 사람도 역시 그러하다. 사람의 소리 중에 정교한 것이 말이며, 말 중에서도 문장은 더더욱 정교한 것이다. 때문에 가장 잘 우는 것을 골라 그것을 빌려 운다." -한유의 『자를 테면 자르시오』, ‘내가 우는 이유(送孟東野序)’ 중에서…

'초목은 바람이 흔들고 물은 바람이 쳐서' 운단다. 또한, 계절의 변화를 '새는 봄을 울고, 천둥은 여름을 울며, 벌레는 가을을, 바람은 겨울을 운다'고 묘사한다. 이즈음 봄날의 숲은 새들의 짝짓기 소리로 드높다. 정녕 새는 봄을 울고 있다. 물상의 섬세한 관찰과 상상력으로 순리를 꿰뚫은 한유이다. 악기도 재료가 무엇이냐에 따라 울림도 다르다. 인간의 마음을 대변할 '쇠, 돌, 실, 대나무, 박, 흙, 가죽' 중 가장 잘 우는 것을 골라 울게 한다.

한유가 남긴 문장의 행간에서 서성이며 울림을 되새김질한다. '운다'는 표현은 어떤 물상의 대변이자 황폐한 삶에 공명을 일으킬 기운이다. 그의 말대로 인간을 울도록 만든 이유가 분명 있으리라. 아마도 자연의 생태계를 뒤흔들고 파괴한 벌인지도 모른다. 그 대가로 인간은 바이러스 전선에서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고 있다. 어쩌면, 신은 잃어버린 것을 알리고자 인간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창밖에 비가 내린다. 봄비가 나를 대신하여 우는가 보다. 이렇게 흠씬 울고 나면, 가슴은 좀 후련해지려는가. 지금, 이 순간 천지인(天地人)이 울고 있으니 바이러스도 어쩌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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