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저 푸른 초원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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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저 푸른 초원 위에
  • 충청투데이
  • 승인 2020년 07월 23일 19시 30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7월 24일 금요일
  •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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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영 충청남도교육청 연구정보원장

이른 아침 장군봉에 올라 내포의 너른 뜰을 가슴에 가득 담아올 수 있는 것은 이곳에 와 살면서 얻은 기쁨 중 최고이다.

나는 대원이 될 기회는 얻지 못했으나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15년 동안 대장이었다. 어디서나 그렇듯이 대장은 본인이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듯이 그 이상은 더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나의 ‘치명적인 태생적 약점’(맏이에게 ‘꼭 해야 하는 일인데 할 사람이 없어’ 라는 말)으로 인한 시작은 그 후 지금까지 내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한 부분이 됐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깊이를 갖고 있는 존 듀이의 말이자 스카우트의 철학인 ‘하면서 배운다’(Learning by doing) 였던 것이라 여겨진다.

사람 키보다 더 큰 옥수수밭 사이로 난 길을 한 참 달렸는데도 아직도 보이는 것은 사방에 옥수수와 하늘, 2차선 아스팔트 도로뿐인 곳에서 이제는 신기함이 지루함으로, 더 나아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산둥성은 그렇게 대원들과 나에게 다가왔다. 한·중·일의 지자체가 협력 사업으로 매년 돌아가면서 청소년을 초청해 문화 이해 교류 활동을 하는데 충남도에서는 그해 150여 명이 참여했다.

저 푸른 초원이 눈에 들어올 때면 생각나는 그 사람이 있다. 2003년 태풍 매미는 캠프 하루 만에 1만 5천여 명의 영지를 몽땅 쓸어갔다. 총재를 중심으로 한 마을 장(17개 시·도 인솔 책임자)과 대회운영위원회(아태지역 국제야영대회는 장관, 해당도 지사들이 공동 개최자임) 회의에서 대원들은 속초 인근의 학교로 모두 대피시키고 밤새 인근 부대의 협조로 영지를 복구해 이후 캠프를 계속하기로 함에 따라 충남의 마을 장이었던 나는 600여 명의 대원이 머물고 있던 임시 캠프에서 대장들에게 학교와 학부모에 대한 안내에서부터 대원들의 건강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협의하고 대원들의 잠자리를 챙긴 뒤, 첫새벽에 영지로 돌아와 보니 세계최강 대한민국육군에 의해 밤새 영지가 말끔히 다시 세워졌고 이후는 일정대로 진행됐다.

대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해병대가 지원하는 속초 수상 모험 활동을 다녀왔다. 그런데 대장님 한 분이 안 보여 찾아보니 돌아오던 중 대회전 영지 정비 중에 미쳐 못 닫은 맨홀에 빠져 몇 시간 동안 갇혀 있었던 것이었다. 풀이 자라 들판을 초원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안 보였다. 외부 병원에 가시라고 간곡히 말씀드렸는데도 대회를 마치고 가신다고 하여 고민 끝 허락했는데 후에 들으니 넓적다리부에 금이 가서 입원하셨었다고 했다. 그저 고개 숙일 뿐….

저 푸른 초원 위에서 ‘하면서 배운다’(Learning by doing)를 일상으로 자연의 위대함에 고개 숙이는 겸허함과 생명의 소중함을 발견하고 자신의 출발점인 부모와 신께 감사하는 경험을 코로나19의 일상에 갇혀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서 빨리 열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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