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조성태 前국방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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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조성태 前국방부 장관
  • 선태규 기자
  • 승인 2003년 08월 12일 00시 00분
  • 지면게재일 2003년 08월 12일 화요일
  •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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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우선" 正道고집 외길

"고향이라는 건 마치 나의 육체와 정신세계를 실제 만들어 준 어머니(모체)처럼 항상 가슴속에 남아 있다."

천안시 풍세면 용정리 대정마을 깊은 산골에서 태어난 조성태 전 국방부 장관은 "용이 나온 우물이 있다는 데서 용정이라는 말이, 그 우물 중에서 가장 큰 우물이 있다고 해서 대정"이라고 출생 지명의 어원을 풀면서 고향의 향수를 더듬어 갔다.

집에서 4㎞ 떨어진 풍세국민학교를 6년간, 10㎞ 거리의 천안중학교를 3년간 걸어서 왕복했던 조 전 장관은 중학생 시절을 회고하며, "키 145㎝에 무거운 가방을 둘러메고, 매일 20㎞를 걷는다고 생각해 봐. 그때를 생각하면 '죽었다가 깬 기억'밖에 없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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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다 깬 기억'이란 '죽을 만큼 고생했다'는 뜻이라고 조 전 장관은 웃으며 첨언했다.

"그런데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트럭에 몰래 올라타서 가는 '운 좋은 날'이 있거든. 문제는 지나가는 트럭에 올라타려고 가방을 휙 던졌는데, 가방만 타고 자신이 못탔을 때 정말 난감해. 그때는 자전거 타고 통학하는 선배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는데, 선배는 전력질주로 차를 쫓아가 운전사에게 무릎 꿇고 통사정해서 가방을 되찾아 오는 거지."

조 전 장관은 중학교에서 다시 초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가 말을 이었다.

"국민학교 3학년 때 북한군이 3개월 동안 남한을 점령한 적이 있었어. 당시 아버지는 군량 창고를 책임지고 계셨지. 동네 사람들이 보릿고개로 굶고 있는 모습을 접한 아버지는 그날 저녁 창고문을 열어 버렸어. 삽시간에 쌀 창고는 바닥을 드러냈고, 그 다음날 아침에는 그야말로 난리가 날 수밖에. 인민군에 체포된 아버지는 천안에서 대전까지 끌려가 사형선고만을 기다리게 됐지."

조 전 장관은 동네 사람들에게 베푼 인심 덕분인지 주민들의 구명운동과 술을 마셔서 이성적 판단을 못했다는 점이 정상 참작돼 직위 해제로 아버지에 대한 징계가 끝났다고 말했다.

조 전 장관은 아버지의 극적인 직위 해제가 육사 입학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북한군을 위해 부역한 사실이 있으면 입학이 거절되기 때문. 그러나 조 전 장관이 군인의 길을 걷게 된 또 다른 극적인 요소가 있었다.

조 전장관은 "난 사실 군인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신체적으로 왜소했고, 군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도 있고 말이야"라며 "고등학교 시절 서울 고모집에서 자취를 할 때, 고종 사촌 형의 친구가 해군사관학교를 다녔는데 멋있게 보이더라구. 그래서 원래 해사를 지원하려고 했지. 그런데 키 기준이 162㎝인 거야. 난 당시 160.5㎝였거든. 육사는 다행히 160㎝여서 거기를 지원했는데, 이번엔 몸무게가 걸리는 거야. 한계가 53㎏인데, 내 몸무게를 재보니까 500g이 모자란 거지." 이때 운명의 고리를 연결한 사람은 몸무게를 재는 학생이 "너 저기 수돗가 가서 물 실컷 먹고 와"라며 살짝 귀띔했다. 결국 체중한계를 초과해 합격.

장관이 되기 위한 운명적 과정도 있다.

"육사 졸업 때 성적이 7등이었어. 미국에서 토목을 공부하기로 돼 있었는데, 어느날 교수가 부르더니 1등부터 4등까지만 미국으로 가게 돼 있으니 서울대에서 공부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그러더군."  조 전 장관은 "당시 어린 나이에 외국 바람이 들어선지 속이 상해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홧김에 지원한 게 맹호부대 소대장. 그때부터 조 전 장관의 36년 10개월 야전생활은 시작된다. 조 전 장관은 지난 1996년 10월 2군사령관(대장)으로 예편했다.

조 전 장관은 육사에 입학해 대령까지 지내는 동안 삶의 좌우명은 '도전(Challenge)'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장군이 된 후부터 현재까지는 자신이 만든 한자성어 '정도유구(正道唯久)'로 바뀌었다고 했다. 바른 길만이 영원하다는 뜻. 국가와 군을 위해 최선의 길은 어느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한평생을 살아온 것이다.

"요즘에도 가끔 천안에 내려가거든. 그럼 마치 어머니 품에 들어온 느낌이 들어."

조 전 장관은 "중학생 때 걸어서 통학하던 길 중에 '긴고개'라고 있었어. 고개가 높기도 높았지만 무척이나 길어서 붙인 이름인데…" 하며 먼산을 바라본 후 "지난번엔 차를 타고 일부러 그 거리를 가 보았어. 그때 옛날 생각이 나더군. 이렇게 가깝고 낮은 고개가 당시에는 왜 그리 힘들게 느껴졌는지 그때가 생각나서 스스로 빙그레 웃곤 해"라며 말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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