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인사칼럼]이기주의
상태바
[출향인사칼럼]이기주의
  • 대전매일
  • 승인 2003년 08월 26일 00시 00분
  • 지면게재일 2003년 08월 26일 화요일
  • 32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민호
지금과 같이 이기주의가 만연되어 있었던 때가 우리 사회에 또 있었던가?

우리는 요즘 우울하다. 우리는 지금 이기주의, 민주주의와 개인주의를 이성 있게 분별해 내고 있는가? 우리는 혼란스럽다.

민주주의는 개인주의 이념에 입각한다. 모든 개인은 각자가 자기의 이익을 최대한 추구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즉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투쟁의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만인의 이익 추구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화된다라는 것이 민주주의의 신념이다.

그렇다면 민주화된 우리 사회에서 모두가 각자의 이익을 위해 최대한 투쟁하는 것은 무엇이 잘못인가?

민주주의의 발상지 아테네의 철인, 아리스토텔레스는 갈파하였다.

'민주주의는 민주 정치의 과잉에 의하여 망한다.' 그는 중우정치(衆愚政治)를 우려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우매한 자는 전체 사회나 장래의 이익보다는 자기만의 당장의 이익에 쉽게 눈이 먼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표로 결정된다. 그러니 결국 우매한 다수가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라는 것을 걱정하였던 것이다.

비관적으로 볼 때, 개인주의는 이기주의로 흐르기 쉽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은 사회의 살벌한 분열과 대립을 초래하고 말 것이다. 자유는 여기에 부어지는 기름과 같다.

'보이지 않는 손'은 언제 나타나는가?

선진 민주국가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양손을 가지고 있다. 오른손은 '공권력'이다. 왼손은 개인의 '도덕률'인 것이다.

법과 제도가 무시되고 짓밟히는 '민주사회'가 있다면, 하나만이라도 좋으니 제시해 보라. 미국의, 영국의, 프랑스의, 아니 저 만인이 신에게 평등한 로마 가톨릭계의 준엄한 법 집행을 보라. 누구에게도 평등한, 엄격한 법 집행으로 보이지 않는 '오른손'은 모든 이기적 행동을 손아귀에 꽉 잡고, 민주사회의 무질서와 분열을 막아 내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왼손'은 개개인의 도덕적 품성이다. 자기의 이익을 추구해도 타인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 도덕성.

개인주의 사회인 영·미 국가에서 가장 중시되는 덕목인 폴라이트(polite:예의바름)는, 이를 갖추지 못하면 사회적인 천시의 대상이요, 프랑스인들은 똘레랑스(tolerance:인내, 배려)를 생명과 같이 여긴다.

일본인들은 메이와쿠(迷惑:폐)를 끼치지 않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기까지 한다. 남의 이익도 내 이익과 같이 존중하지 않으면 그 사회는 동물의 사회로 떨어지고 만다고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배우고 있다.

그리하여 '왼손'은 보이지 않게 민주사회의 개인주의가 이기주의로 빠지는 것을 막아 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들 국가에서는 틀리고 말았다. 그러면 우리 사회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는 틀리고 있는 것인가?

지금 우리 사회는 오른손은 묶이고, 왼손은 소매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있다.

포퓰리즘(populism·대중영합주의)의 중우정치가 고개를 내밀어도, 민주화의 이름으로 야수와 같은 이기심이 세상을 휩쓸어도, 이데올로기의 가면 속에 반사회적 세력이 손톱으로 할퀴어도, 우리를 보호하고 인도할 손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공권력과 법이 짓밟혀도 우리는 방관한다. 도덕이 무너져도 우리는 무시한다. 이웃과 자손이 죽어도 우리는, 우매한 우리는 너무도 태연하다.

정녕 우리는 이기주의의, 이기주의를 위한, 이기주의에 의한 민주주의의 파멸이 두렵지도 않은 것일까?                                                          
빠른 검색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