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길 혹은 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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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길 혹은 길의 이야기
  • 충청투데이
  • 승인 2014년 10월 20일 20시 25분
  • 지면게재일 2014년 10월 21일 화요일
  •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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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글밭]
백낙천 배재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명량’의 도도한 물결이 휩쓸고 지나간 후, 필자는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인 김훈의 ‘칼의 노래’를 다시 꺼내들었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작가의 강렬한 서사의 힘에 숨 가쁘게 이끌리다가 문득 몇 해 전 읽었을 때, 김훈의 책이 주었던 푸른 빛 감동이 새삼스러워 다시 ‘자전거 여행’의 책장을 넘기고서야 제대로 숨을 고를 수가 있었다.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의 절벽 앞에서 몸을 떨었다'라고 말하는 작가의 고백은 다시 읽어도 분명한 경험적 사실임에 틀림없다. '풍륜(風輪)'이라고 이름 붙인 자전거를 타고 작가는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세상의 풍경을 꼼꼼하게 눈 깊은 곳에 담아 두었다. 그리고 불면의 밤이면 연필로 꾹꾹 눌러 쓰기를 1년 가까이 했다고 한다. 결국 작가가 풍륜을 통해 본 것은 늘 글보다 앞서 달렸던 길의 흔적들인 셈이었다. 여수 돌산도 향일암에서 출발한 풍륜은 여의도에 이르러 그 고단한 여정을 멈춘다. 필자의 독서 경험에만 의지해 말한다면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아는 만큼 보인다'는 교양의 힘을 앞세운 감이 있다면 ‘자전거 여행’에서 보여준 작가의 질식할 듯한 화려한 수사가 바람에 꽃잎 지듯 어지럽게 흩날릴 때, 그 분분히 떨어지는 꽃잎에 잠시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스펙과 정보가 지식으로 둔갑한 메마른 이 시대에 풍륜의 기록은 우리에게 문화적 교양이 무엇이며 또 그것을 누리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전범(典範)이라고 하겠다. 교양의 맑은 눈과 지혜의 밝은 통찰을 통해 드러나는 세상의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다. 무엇보다도 ‘자전거 여행’의 미덕은 자연을 노래하되 자연만 노래하지 않았고, 인간의 삶과 그 흔적이라고 할 역사를 아우르는 혜안이 빚어낸 깊이에 있다고 할 만하다.

흡사 총 31개 사진으로 꾸며진 화보집을 보는 듯한 ‘자전거 여행’은 선암사 뒷산 산수유를 바라보다가 봄에 몸이 마르는 슬픔인 춘수(春瘦)의 절정을 어느 오도송(悟道頌)을 통해 보여주더니, 어느새 눈길을 돌려 남도의 밭두렁을 가리켜 둥근 가락지요 이지러진 달과 같다고 표현한 작가의 수사에서는 국토에 대한 그 나름의 지리적 심상마저 느낄 수 있었다. 이내 풍륜은 무등을 지나 '누정(樓亭)'에 이르니 풍륜이 돌부리를 비켜 지나듯, 작가는 지루할 역사적 사실을 경쾌하게 지나 '소쇄원에는 산수유가 피었다'고 하면서 담양의 대숲에 이른다. 그리고 어느새 만경강 하구에서 제 몸을 태워 날아가는 도요새에게서 '필멸(必滅)의 장엄함'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꽃피는 동네 '화개(花開)', 그 녹차 향 그윽한 곳에서 목을 적시는 것은 차라리 관조이리라 생각하면서 필는 차를 덖듯, 원고지를 칸칸이 덖어 글로써 피어나는 작가의 그 문향(文香)에 취했다. 이렇듯 작가는 필자에게 생의 시간들이 다녀간 자리에 생긴 '이야기의 길'을 지나 '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길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은 여지없이 공평한 것임을 풍륜을 통해서 여실히 깨닫게 해주었다. 그러기에 오늘도 필자는 사람이 앞서지 못하는 바퀴와 사람을 앞설 수 없는 바퀴 사이를 달리는 풍륜에 의지해 힘차게 페달을 감을 것이며, 또 감은 만큼 기어이 그것을 풀어주면서 내려와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그래, 지금 나는 그 길 위를 달리고 있기에 멈출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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