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줏값 외상 3000원과 간장 두 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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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줏값 외상 3000원과 간장 두 종지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5년 12월 23일 20시 21분
  • 지면게재일 2015년 12월 24일 목요일
  •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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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로]
▶ 요즘 아이들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양말을 걸어놓지 않는다. 깊은 밤까지 멀뚱멀뚱 기다리지도 않는다. 철이 들어서가 아니라 이미 부모의 ‘거짓말’을 눈치 챘기 때문이다. 더더구나 산타클로스가 왕래할 굴뚝도 없다. 만약 굴뚝이 있다 해도 산타는 뚱뚱해서 굴뚝을 오갈 수 없다. 수학이나 과학적으로 접근하면 산타의 존재는 미증유(未曾有)다. 산타가 하루 동안 지구에 있는 모든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려면 소리보다 빠른 속도로 비행해야한다. 지구촌 아이들이 20억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거리상으로는 31억2500만㎞, 1초에 2600㎞를 달려야한다는 의미다. 이는 소리 속도의 7500배고, 빛의 속도 0.9%에 해당한다. 눈 깜짝할 새 수천㎞를 '비행기' 속도로 이동해야하는데 '빨간 코' 루돌프는 '썰매'를 그냥 썰매의 속도로 달린다. 아, 선물을 줄 산타는 마음속에만 있다.

▶2015년 10월 '단골'이라는 칼럼을 썼다. 잠깐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회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뒷골목에 허름한 단골술집이 있다. 땅거미 어스름 내려, 꽃등불이 켜지면 으레 습관처럼 기어든다. 그런데 '거래'를 뚝 끊었다. 막판에 시킨 소주 한 병 값(3000원)을 외상으로 달려고 했는데 여주인이 매몰차게 거절한 것이다. 근 10년 간 기천만 원은 족히 갖다 바친 곳인데 너무 매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됐든 그녀는 단골을 잃었고 난, 단골술집을 버렸다…." 칼럼의 반향은 독했다. 어떤 독자는 이메일을 통해 '3000원 외상이라니, 너무 찌질하다'면서 꾸짖었다. 난 사과했다. 그리고 칼럼을 접을까 깊이 고민했다.

▶그로부터 한 달 20일 만에 비슷한 류(流)의 칼럼이 조선일보에 실렸다. 평소 글을 맛깔나게 쓰기로 정평이 났던 기자가 간장 두 종지 때문에 '밥집'을 끊었다는 내용이었다. 칼럼을 요약하면 이렇다. "중국집에 갔다. 탕수육을 시켰는데 간장 종지가 두 개뿐이다. 일행은 4명인데 간장은 2개. 종업원을 불러 간장 종지 2개를 더 달라고 했더니 2인당 하나라면서 거절했다. 당장 간장 한 박스를 주문해 이 집에 '킵'해놓고, 다음에 오면 대접에 간장을 부어 먹을까도 생각했다. 나는 그 중국집에 다시는 안 갈 생각이다. 간장 두 종지를 주지 않았다는 그 옹졸한 이유 때문이다…." 이 칼럼의 피드백은 독했다. 네티즌은 댓글로 꾸짖었다.

▶얼마 전 거래를 끊었던 그 단골집 앞을 지나가는데, 가슴이 먹먹했다. 간판이 바뀌고, 주인까지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아, 살 속까지 시려왔다. 마치 '3000원 사건' 때문에 그녀가 떠난 것처럼 자격지심마저 들었다. 3000원 외상과 간장 두 종지, 그리고 산타의 비애…. 난 단골을 끊은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끊은 거였다. 제 몸에 난 상처만 봤다. 마음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남루한 옹졸함이 눈사람처럼 바닥에 흘렀다.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또 한 번 사과했다. 눈이 내릴 듯 하늘이 무거운 크리스마스이브다. 문득 궁금해진다.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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